<판의 미로>는 물론 마케팅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따져봤을 때, 이거 흥행할 수 있나란 의문이 다시금 되돌아오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작품이고, 뛰어난 영화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말 그대로 현실과 판타지의 영역이 충돌하며 또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작품이었거든요.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판타지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는 보통 분리되거나 혹은 어반 판타지라는 방식으로 크게 변형되어 사용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판의 미로>는 두 세계가 충돌하고 갈등하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결말에 대해서 환각이냐 아니냐의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에서 두 세계관을 융합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꽤 현실적인 배경과 꽤 현실적인 (혹은 실존인물인) 인물들을 데려다 놓고 <피노키오>를 요리한 모양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난하고, 좋지만, 어떤 점에서 조금은 아쉬움이라고 해야할까요.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라는 이름이 걸려있으면 여러분들은 어떤 걸 기대하시나요? 다채로운 크리쳐, 독특한 세계관, 약간은 음울한 성인용 동화와 같은 키워드가 떠오르실 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잘 드러나진 않습니다.
물론, 감독의 이름값에 비해 <헬보이>는 1, 2편 모두 좀 따뜻한 편의 영화였고, <퍼시픽림>은 열혈로봇물에 거대괴수물을 섞은 영화였죠. 충분히 다른 이야기, 다른 세계관을 그려낼 수 있는 감독이지만, 감독과 피노키오라는 소재를 가지고 예상한 것과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이 감독이 여전하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습니다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렇게까지 음울한 성인용 동화라기보단 오히려 남녀노... 에 소는 조금은 더 나이가 들면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요약해보자면, 결국 이건 어쩌다 탄생한 크리쳐가 세상과 주변 인물과 어떻게 관계 맺는 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메시지는 굉장히 보편적이고 외려 뻔하다.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정도로 정석적으로 다루어져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 대해서는 몇 가지 포인트가 감상을 가를 것 같아요. 과연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잔혹동화라는 문장에 대해서 얼마만큼을 기대하고 왔느냐, 그리고 상대적으로 탄탄하지만 조금은 산만할 수도, 뻔할 수도 있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가 영화에 대한 감상을 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꽤 좋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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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판의 미로는 언더테일이나 원샷 같은 비디오 매체 이전의 '너는 알면서 거짓부렁을 믿어보고 싶었던 적이 없냐?'라고 관객을 다그치는 라소묭적인 메타픽션이라 좋았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약간 보였던 그런 요소가 없는 퍼시픽 림 같은 대중대중적인 이야기라면 좀 나중에 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