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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7/13 16:58:23 |
Name |
한량 |
Subject |
Goodbye |
I.
"..."
"..."
요 전날의 일 때문인지 웬지 분위기가 서먹했다.
"우대리."
먼저 말을 꺼낸것은 팀장님이었다.
"네."
나는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이제는 내야지..."
무슨뜻인지 잘 알고 있다.
"네."
시선은 그대로 일하던 모니터를 향한채 나는 그저 무미건조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II.
'New World On The Cable'
회사 사훈과 같은 이 말처럼, 2000년 7월 18일부터 내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었다. 정말 이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내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로의 첫걸음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입사 첫날, 팀장님의 자리는 비어있었고 나와 갓 입사한 내 동기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 곧이어 누군가가 설명해 줬다.
"당신들을 담당할 팀장이 그저께 패러(패러 글라이딩)을 하다가 추락해서 허리가 부러졌습니다."
"-_-;;;"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한 가수 강원래와 같은 병원에서 수술받은 팀장님은 척추에 볼트 몇개 박고 보조대를 차고 3개월이 지나 가까스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남들은 3달이면 끝나는 OJT를 우리는 3달에 2달을 더해서 5달만에야 끝낼 수 있었다.
III.
나름대로 유명한 회사의 합격을 포기하고 10여명의 조그만 벤처회사에 나는 공채1기로 내 동기와 둘이 같이 입사했다. 알콜리카라고 불리는 메탈리카 멤버들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고참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OJT 기간중에 고참 두분과 술을 마시던 내 동기가 술을 한번 사달라고 투정(?)을 부렸다. 이게 실수였던것 같다. 바로 '쫑'이라고 불리는 팀장님이,
"그래?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봐"
라는 멘트를 날리고는 잠시 사라졌다. 10여분 뒤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돈뭉치가 쥐어져 있었다. 언뜻봐도 150만원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 분은,
"자, 가자"
라는 멘트를 날리셨고,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테헤란로로 향했다. 현란한 어느 네온사인 아래 지하 가게로 들어가자 눈이 휘둥그래질 늘씬한 미녀들과 웨이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곧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웨이타의 가슴에는 '김두환'이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춤추는 미녀를 구경할 수 있는 대기석을 뒤로하고 난 '룸'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이게 내 첫 '룸'입성기이다.
그후... 우리는 일주일에 두번씩 '룸'이라는 곳에 다녔다. -_-;;;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출받아 그 돈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는 그자리에 끼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매너상 한두달에 한번씩은 꼈다.
IV.
나의 스타크 실력을 모두들 궁금해 했었다. 입사일 회사 최고수와의 싸움에서 압승을 거둔 나의 현란한 키보드 조작과 마우스질에 모두들 감탄을 마지 않았다. 그리고 고참들은 내게 이런 별명을 붙여줬다.
'미췬 놈'
그래서 그날 이후에 나의 ID와 별명은 'Crazy Woo'가 되었다. 내가 1:3으로 직원들을 이긴 이후로 회사에서 스타를 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그리고는 당구내기가 시작되었다.
V.
오늘 마지막 당구를 쳤다.
결과는 나의 완패였다.
VI.
"우리 커피한잔할까?"
사장님이 문득 부르셨다.
"네."
나는 답했다.
"나가서 마시는게 어떨까?"
"좋습니다. 마침 요 앞에 스타벅스가 생겼더라구요."
"그렇게 하지."
나는 카푸치노를 시켰다. 사장님이 정확히 무엇을 주문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흡연석이 없는 스타벅스는 골초인 사장님에게는 적당한 장소는 아닌것 같았다.
"우리, 그냥 좀 걷지."
"그럴까요? 마침 바람이 불어 바깥도 시원합니다."
"그래? 잘됐군."
VII.
"먼저... 미안하다."
회사 내외로 나는 '전자이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은 말을 참 아낀것 같다. 그러기에 사장님이 먼저 운을 떼셨다.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드릴 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정많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내 회사. 이런 회사를 나는 나 개인의 꿈을 위해 스스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한 것은 바로 나인데... 내가 미안한데, 모두들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니 꿈을 이루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너에게 더 많은 비젼을 제시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제 꿈만을 위해 나가는 내게 열이면 열 모든분들이 가서 꿈을 펴라고 한다. 술만 한잔하면 가지마라고 눈물까지 보이면서.
VIII.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앞 공원을 한잔의 커피와 함께 거닐었다. 한걸음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올 즈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깐 저기서 비 피할까?"
사장님과 나는 큰 나무 밑으로 향했다.
VIIII.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비를 피하던 나무 아래에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운을 뗐다.
"그래."
"그때는 팀장이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가서 넓은 세상 보구, 걔네들 다 눌러버려! 너 돌아올 한자리 준비해 둘께"
그리고 그는 빗속에서 담배를 한모금 빨았다.
X.
이제 한 시간이 지나면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이제 나는 이글을 접고 마지막 메일을 쓰려한다.
"고맙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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