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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18 16:48:59
Name 몽키.D.루피
Subject [일반] [13] 산닥푸르 여행기 (수정됨)
오래 전, 내가 왜 거기까지 갔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신기한 곳을 간 적이 있다. 스물을 한해 넘긴 뭣도 모르는 청년이 생애 첫 배낭여행으로 찾아간 곳은 이름도 생소한 동쪽 히말라야의 산봉우리 산닥푸르. 지금이야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하나의 썰이 되어 버렸지만 내 안에는 그 여행에 대해서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있다. 나이가 들고 여행의 느낌을 잊고 산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그 산봉우리가 생각이 많이 난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기묘한 여행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회상하는 느낌이다.

이 여행의 기록은 오로지 내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여행 정보는 '인도 100배 즐기기'라는 유명한 여행 책자였는데, 그 책에 산닥푸르 트레킹은 반페이지에 불과했다. 지금도 산닥푸르를 검색하면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그땐 무슨 깡이었는지 종이 쪼가리나 다름없는 여행 책자 한토막에 의지해서 여행했던 것이다. 남겨진 기록이라곤 일회용 카메라 하나로 찍은 사진 20여장이 다였다. 그 사진들도 고향 집 구석 박스에 고이 모셔져있어 꺼내볼 수도 없다. 오래 전 일이라 주요지명도 잘 생각이 안나고 사건의 순서나 시간도 뒤죽박죽이다.

단편적인 기억을 중심으로 머리 속에만 남아 있는 여행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캘커타
18년 전, 대학 생활을 방황하던 나는 캘커타의 한 선교사님 집으로 보내졌다. 최악의 대기오염을 자랑하는 캘커타 시내 한복판의 좁은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영어 성경만 쓰고 읽는 시간이 수 개월 이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지금이야 내가 똑같은 환경에 처해진다고 해도 낯선 환경에 대한 모험심과 호기심도 있고 주변에서 안 챙겨줘도 알아서 잘 돌아다니고 놀았겠지만, 그땐 그냥 모든게 뻘짓 같이 느껴지고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에서 일행이 왔다. 선교사님들은 한국에서 온 손님을 데리고 여행가이드를 해주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그 여행에 내가 동반하게 되었다. 그때가 기회였다. 일행들과 헤어진 후 나 혼자 남아 약 10일간의 여행을 한 것이다.

다질링 가는 길
당시 선교사님이 캘커타에 오는 손님들과 가장 많이 갔던 여행지는 캘커타 북쪽 히말라야 산턱에 자리잡은 다질링이라는 도시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 차 생산지로도 유명한 다질링은 히말라야에서 두번째로 높은 칸첸중가를 감상할 수 있는 그나마 가장 접근성이 좋은 도시이다. 그나마라고 한 이유는 다질링이라는 곳을 가는 거 자체가 일반적인 여행 루트에 비하면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다. 일단 캘커타에서 기차를 타고 12시간을 올라가 실리구리라는 곳에 도착해야 한다. 인도의 기차는 연착으로 악명이 높은데 대충 저녁부터 기차를 기다리다가 밤중에 타면 다음날 오전에 도착한다고 보면 된다. 실리구리에 도착해서 역 앞에 나오면 수많은 짚차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골라타고 다질링으로 올라가야 된다.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 기억에 차 한대 빌리는데 400 루피 정도였던 거 같다. 짚차를 탔으면 꼬불꼬불 산길을 4시간 가량 올라가야 된다. 오프로드나 다름없는 길을 한참을 올라가다가 티벳불교 사원이 보이면 곧 도착한다는 징표다. 산길 코너를 돌면 능선을 따라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꽉들어찬 산악 도시가 펼쳐지는데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혀지지가 않는다.

다질링 숙소
건물 전체가 3층 혹은 4층 정도 되고 여행자들이 모이는 거실 같은 공간에 아늑한 벽난로가 있는 목조 건물이었다. 1박에 700-800루피 정도 했으니 당시 배낭여행자 입장에선 상당히 고급 숙소인 셈이다. 저녁에는 종업원이 따뜻한 물이 들어있는 커다란 핫팩을 가져다 줬었고 아침으로 나오는 짜이랑 간단한 식사가 맛있었다. 1층에는 네팔 음식점이 있었는데 네팔식 만두국이 맛있었다. 기름이 둥둥 떠있는 게 보일 정도라 거부감이 들수도 있지만 맛은 그렇게까지 느끼하지 않았다. 고산지대 국 요리는 기름반 물반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기름이 많은데 그 이유는 나중에 여행 중에 깨닫게 된다.

시킴
다질링에서 일행과 헤어진 후 처음으로 갔던 여행지는 산닥푸르가 아니라 시킴이었다. 시킴은 중국, 네팔, 인도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왕국으로 나중에 인도로 스스로 흡수된다. 히말라야의 칸첸중가가 시킴에 있기 때문에 칸첸중가 트레킹이나 등반을 가려는 사람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왜 하필 시킴에 가고 싶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그냥 칸첸중가를 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생각과 남들이 안가는 데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다. 실리구리에서 다질링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짚차를 한자리 예약하고 또 약 4시간 정도를 가서 시킴의 주도 강톡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외국인이 시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 허가서가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는 짚차를 타고 가다가 시킴 보더에서 내려서 현장에서 바로 허가서를 받았다. 원래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다 이런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종 안 되고 무사히 돌아온게 다행인 거 같다. 
강톡은 다질링보다 더 작고 아기자기한 도시로 도로 중앙에 가로등이 줄 지어 있는 메인 스트릿이 참 예뻤다. 강톡에서는 택시를 한대 빌려 칸첸중가를 볼 수 있는 뷰포인트는 다 찾아다니며 평생 볼 칸첸중가를 다 보았다. 내가 본 가장 멋있는 히말라야는 뒤에 이야기할 산닥푸르에서 본 히말라야지만 칸첸중가를 가장 가까이서 크게 볼 수 있었던 곳은 시킴이었다.

산닥푸르 1일차
시킴에서 돌아와 다질링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드디어 산닥푸르로 출발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그 전날 미리 알아둔 자동차 승강장 같은 주차장으로 갔다. 그 동네의 주요 교통 수단인 짚차나 미니버스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거기서 짚차인지 미니버스인지를 타고 두어시간을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원래는 도저히 그곳의 지명이 생각이 안 났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아마도 수키아 포카리라는 마을이었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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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대략적인 트레킹 경로다. 수키아 포카리에서 출발해서 도로를 따라 걷다가 인도 네팔 국경 능선을 따라서 쭉 올라가다보면 산닥푸르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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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지명과 높이를 볼 수 있는 트레킹 지도이다. 산닥푸르를 제외한 지명은 다 까 먹었었는데 이 지도를 보면서 겨우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앞으로 언급될 메그마, 통루, 내셔널 파크 체크포인트 등을 볼 수 있다.

히말라야 청년
첫번째 목적지는 메그마라고 불리는 산장이었다. 원래는 여기서 하룻밤을 묵을 생각이었다.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서 가벼운 가방을 맨 한 청년을 만났다. 메그마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그 청년은 자신이 지름길을 안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 청년은 산닥푸르보다 좀 더 북쪽 마을에 살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부터 원래 트레킹 코스를 벗어나 알 수없는 산 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도무지 어디로 가는지 알길은 없었지만 히말라야 출신 청년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주렁주렁 가방을 매고 있던 나는 마치 축지법을 쓰듯 산을 타는 히말라야 청년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 청년이 멀찌감치 앞서나갔지만 간격이 더 벌이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나를 배려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한참동안 풍경좋은 능선을 빠른 속도로 타고 올라갔다. 쫓아가기 힘들었지만 트레킹 초반이라 그래도 에너지가 있었다. 얼마 후 청년은 나에게 이쪽으로 가면 된다며 길을 가르쳐주고 자신이 원래 가던 길을 갔다. 히말라야 청년 덕분에 메그마 산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산에 사는 개
메그마에 비교적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조금 더 욕심을 냈다. 메그마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통루라는 해발 3070m쯤 되는 봉우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요량이었다. 거리 상으로는 가까웠는데 높이가 있다보니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 중간에 구멍가게에서 산 과자와 초콜릿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올라가는데 삽살개처럼 생긴 덩치 큰 개 한마리가 쫓아오기 시작했다. 삽살개처럼 털이 눈을 덮은 강아지였는데 덩치는 리트리버 정도였다. 사람 한명 안보이는 산속에서 개를 만났으니 겁이 나는게 당연했다. 개를 멀리 쫓을 생각으로 산 밑으로 과자를 힘껏 던졌다. 강아지는 순식간에 산 비탈을 타고 내려가 과자를 집어 먹고 다시 순식간에 올라와서 나를 따라왔다. 무슨 개가 이렇게 산을 잘 타는지 과자를 먹으러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수차례 반복하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협적이지도 경계하지도 않았고 그저 낯선 여행자에 호기심이 생겨서 따라왔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그 개와 동행 아닌 동행을 하면서 갔는데 어느 순간 안보이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쯤 통루에 도착하자 산장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언덕 위에서 그 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를 따라다녔던 산에 사는 개는 통루 산장에서 키우는 개였던 것이다.

통루 산장
처음에는 통루가 마을인줄 알았다. 올라가서 보니 숙소가 있는 건물 한채와 그곳을 운영하는 가족만 살고 있었다. 체크인이라고 할 것도 없이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저녁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저녁은 따로 메뉴가 있는게 아니라 산장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다. 그날의 손님은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뜻밖의 하룻밤의 홈스테이었던 셈이다.

산닥푸르 2일차 - 국립공원 입구
위 지도를 보면 통루 다음에 내셔널 파크 체크 포인트라는 곳이 있다. 통루에서 아침일찍 출발한 나는 드디어 그곳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산닥푸르 트레킹은 가이드를 필수로 동반해야 됐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혼자 출발했던 것이다. 저 멀리서 국립공원 입구가 보이자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트래킹 코스는 산능선을 중심으로 동쪽 길이 인도고 능선을 넘어서 서쪽 길이 네팔이다. 네팔로 넘어가는 산 능선은 경주 고분 정도 높이의 나즈막한 언덕이었다. 국립공원 입구를 멀찌감치 앞두고서 나는 언덕을 넘어 네팔로 넘어갔다. 나는 공식적으로 네팔을 가본적은 없지만 그 때 내가 걸었던 짧은 코스는 분명 네팔이었다. 그리고 충분히 체크포인트를 지났다고 생각됐을 때 다시 언덕을 넘어 인도로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위험한 짓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그 때의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미아되기
내가 기억하기로 2박 3일 동안의 트래킹 코스에서 총 세번 길을 잃었다. 첫번째는 메그마로 가던 도중 잘못된 길로 가다보니 이상한 산길로 빠졌는데 운좋게 사람을 만나 다시 길을 물어보고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다. 사람 한명 만나기 힘든 산속에서 만약 그 사람을 못 만났다면 나는 어디로 갔을지, 다시 되돌아 올 수는 있었을지 의문이다. 세번째는 내려오다가 길을 잃었는데 길을 잃었다기보단 당시 가고 있던 길에 대한 확신이 없는 쪽에 가까웠다. 다행히 사람을 가득 태운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확신을 가지고 내려올 수 있었다.
두번째로 길을 잃었던 것은 산닥푸르를 거의 앞둔 상황이었다. 칼리포카리라는 3100m 정도의 봉우리에서 산닥푸르까지 코스가 굉장히 난감했다. 3100m에서 3600m까지 쭉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한참 내리막을 타다가 막판에 급격히 다시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굉장히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정확히 반대방향의 양갈래 길이 나타났다. 양쪽다 길은 급경사였고 당시 나는 한걸음을 떼는데 거의 30초가 걸릴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산봉우리를 보고 가야 되는데 갑자기 안개가 몰려와 산봉우리를 다 가려버렸다. 정말로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잠깐 앉아서 울다보니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주변에 다 쓰러져가는 화장실이 있었던 것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화장실인데 지붕은 거의 날아갔고 벽도 반만 남은 폐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똥을 쌀 수 있는 구멍과 발판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거긴 화장실이었다. 거기서 볼일 보고 나니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해졌다. 자신감을 갖고 양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길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아챘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희미하게 되짚어보면 길가에 정상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작은 표지석이 있었고 그 숫자가 점점 더 줄어드는게 아니라 커지는 걸 발견했던 거 같다. 어쨌든 30분 정도를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산닥푸르를 향해 마지막 코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산닥푸르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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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무렵 산닥푸르에 도착했을때 제일 처음 보이던 광경은 석양에 물든 칸첸중가였다. 말이 필요 없었다.

산닥푸르 산장
산닥푸르 정상은 3600m가 넘는 고산지대이지만 비교적 평평하고 넓은 지형이다. 통루와는 다르게 숙소로 보이는 집들이 여러채 있었다. 당시는 미리 예약하고 여행을 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주변에 적당한 산장을 찾아 체크인했는데 신기하게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 한명이 맞아주었다. 그날도 그 산장의 유일한 손님은 나였다. 다른 숙소에 여행객들이 좀 있었던 거 같지만 많지는 않았다. 밤에는 나와서 별을 구경했는데 내가 봤던 밤하늘 중에서 별이 가장 밝고 크게 느껴진 곳이었다.(단순히 별의 양으로 따지면 호주에서 봤던 밤하늘에 별이 더 많았던 거 같다.)

산닥푸르 3일차
다음날 아침일찍 일어나 일출을 구경했다. 석양에 물든 칸첸중가가 강렬한 붉은 빛이었다면 일출에 물든 칸첸중가는 황금빛에 가까웠다. 그리고 전날 저녁에는 구름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히말라야 산맥을 제대로 감상했다. 칸첸중가와 세자매 봉우리,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까지. 말그대로 병풍처럼 펼쳐진 히말라야의 네임드 산들을 한번에 구경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껴뒀던 일회용 카메라로 나름 파노라마 샷을 나눠서 찍었다. 나중에 형태를 맞춰보니 파노라마 비슷하게 나오긴했었다. 그동안 혼자 여행하면서 한번도 내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는데 일회용카메라 필름의 마지막 샷이라고 생각해서 산장의 남자아이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고 사진은 찍히지 않았다. 결국 내 사진은 남지 않았다.*

하산
아침일찍 짐을 정리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산닥푸르 트랙킹은 단순히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오르락내리락 능선을 타는 것이다. 즉 하산이 아니라 또 다른 등산이었던 것이다. 이틀동안의 일정으로 몸이 많이 지쳤는지 점심때까지 굉장히 힘들게 산행을 했다. 그러다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곳이 가이리바스라는 동네였던 거 같은데 정확한 지는 모르겠다. 그 동네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동네 입구에 있는 가게의 마루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주사위 놀이인지 뭔 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기진맥진해서 대충 아무 식당에 들어가 라면수프를 주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먹어보지 못한 신기한 형태의 라면이 나왔다. 라면땅처럼 라면을 잘게 부숴서 볶은 다음 다시 육수에 넣고 끓인 것처럼 보이는 수프였다. 다질링에서 먹었던 네팔 만두국처럼 기름층이 보일 정도로 기름이 둥둥 떠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전혀 느끼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먹고나자 마치 힐링포션 먹은 것처럼 힘이 보충이 되었다. 왜 고산지대 사람들이 기름이 많은 수프를 먹는지 알수 있었던 신기한 체험이었다.

야간 산행
라면수프로 힘을 보충한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올라갈때 들렀던 메그마에 다시 왔을 때까지만해도 순조로웠다. 거기서 하룻밤 묵어도 됐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완전히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또 다시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그건 나의 판단미스였다. 올라올 때는 히말라야 청년의 도움으로 지름길로 왔지만 내려갈 때는 지도 상의 길로 가야 했던 것이다. 올라올 때 와보지 못했던 생소한 길이었고 시간도 오래걸렸다. 결국 중간에 해가 지고 말았다. 어두운 산길을 후레쉬 하나 들고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그 길이 평소에 짚차가 다니던 도로였고 비교적 따라서 내려오기는 좋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깜깜한 산길을 어디까지 가야되는지도 모르고 내려왔기에 무서운 마음에 다리가 후들거려도 빠른 걸음으로 막 내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건물과 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난 것이다.

여행의 끝
미친듯이 내려오고 나서 숙소를 잡고 건너편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볶음밥을 시켰다. 하지만 너무 힘들어서 몇 숟갈 떠 먹지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가 완전히 뻗어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다질링으로 돌아오고 다질링에서 캘커타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과정은 솔직히 기억이 잘 안난다. 기차에서 잘생긴 일본인이랑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 캘커타 기차역에 내렸을 때 호객행위하는 인도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일본인을 뒤로한채 한참을 걸어서 벗어났던 기억, 그게 마지막이다.








Ps. 단편적인 기억을 간결하게 적으려고 했는데 글이 굉장히 길어졌네요. 요즘들어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이 너무 많이 나는데 더 잊어버리기 전에 언젠가는 기록을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침 글쓰기 주제가 여행이라서 길게 주절주절 적어봤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확히 말하면 셀카처럼 찍은 사진은 몇장 있긴한데 말그대로 망한 샷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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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8 18:27
수정 아이콘
와 정상... 기억해 두어야 겠네요.
세인트루이스
21/03/19 07:27
수정 아이콘
저도 2000년 중반에 히말라야 트래킹 갔었는데 도중에 산장에서 먹었던 달걀볶음밥이 떠오르네요.
저랑 일행이랑 달걀 볶음밥 하나씩 시켰는데 한 30분 지나서 산장 주인이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오늘 닭이 달걀을 하나밖에 안 낳아서 한명은 야채 볶음밥으로 바꾸면 안되겠냐고 묻던...
완전연소
21/03/20 15:32
수정 아이콘
이런 대모험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은 사실 여행은 아니라 관광인거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동경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용기가 안나서 못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언젠간 꼭 용기를 내서 만만한 코스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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