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앞서.댓글을 너무 재미있게, 그리고 좋은 반응으로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 분 한 분 댓글로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제가 시간도 들쭉날쭉하고 또 좀 버겁기도 하더라고요.
너무 나대는 느낌? 남사시럽나 생각도 들어서 냐하하;
무튼 댓글 주셔서 너무 고맙고,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자게 글쓰기 버튼 너무 무거운 것 아닙니까? 이 망글이 자게 한 페이지에 몇 개씩 있는 게 너무나도 불편하고 오그라들어서 죽겠습니다. ㅜ
글 좀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유…
이 얘기 때문에 따로 쓴 건 아니지만 일단 감사드리고.
댓글 주신 분 중에 게임브리오 엔진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하고요.
물론 제가 적는 건 오로지 제 좁고 얼마 안 되는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하는 것이라
반박시 무조건 님 말씀이 맞습니다.
게임 브리오 엔진으로 당대의 명작들이 출시된 건 팩트이지요.
그걸 부정하고자 했던 건 아닙니다. 좋은 엔진이라는 것도요. (현재 게임브리오로 작업하시는 분들이 기분 나쁘실 수도 있는데, 그러시다면 정말 정말 죄송하고 본의가 아닙니다. 무지한 인간의 말이니 무시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단지, 당시는 직관적인 작업 UI를 가진, 파워풀한 엔진 동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쉐이더 효과로 무장한 ‘그래픽 엔진’들이 대세로 굳어지기 시작했던 시기였죠.
언리얼과 크라이 엔진이 쌍두마차였고
그래픽 렌더러였던 ‘블렌더’를 개량해서 만든 군소 엔진같이, 자잘한 것들도 있던 걸로 압니다. (그냥 단순 기억이라 틀릴 가능성 매우 높슴다. 아무튼…)
제가 왜 게임브리오를 그렇게 이야기했냐면, 대부분은 저런 시대 조류에 맞춰 넘어가고 싶었다가 맞고요.
게임브리오는 제가 당시 듣기로 ‘개량하면 좋은 엔진’이었었습니다. 가성비가 무진장 좋고, 또 개량을 하면 성능을 잘 뽑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였습죠.
문제는 말입니다. 국내에 엔진 프로그래머가 (당시에는, 지금은 좀 많을 텐데) 굉장히 적었습니다. 입사는 커녕, 면접 잡기도 힘들었어요.
두번째 회사에서 클라 프로그래머 형이 있었는데, 그 분이 엔진을 잘 다루는 프로그래머였어요. 그 분은 퇴사를 하고도 회사에 외주 작업자 형식으로 게임브리오 엔진을 개량하고 유지보수 해 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데도 작업 효율성이 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작업을 확인하는데 최악이었어요. 뭐, 느리고 기능 없고 이런 건 둘째 치더라도, 기획자가 데이터를 확인하거나 아트에서 작업물을 돌려보거나 프로그래머가 코딩한 걸 올려보는데 좋은 도구가 아니었었습니다.
그 때문에 게임브리오는 참…제 기억 속에 그렇게(갈아탈 수 있으면 빨리 갈아타는 게 좋은 엔진)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고요.
설명이 잘 되었을지는 모르겠네요. 크크
(그렇다고 지금 쓰는 언리얼4가 좋냐….라면 네니오;; 그냥 쓰는 거쥬…먹고는 살아야 하니까요. 정말 이놈의 (빌드 한 번하고 나오는 신 빌드에서 돌리는) 에디터의 경악할 만한 로딩 속도는…죽을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 개발력의 한계일수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이쯤 말씀드리고, 이번 편 시작해 볼게유.
10. 이 회사를 삼국지에 비유해 보자면…
거창하게 썼는데, 사실 내용은 별 거 없다.
이 회사의 권력 구조를 설명하기에 적합해 보여서 하는 것일 뿐. 크크
이 회사에는 1명의 황제와 3명의 왕이 있었다.
당연히 황제는 C회장님.
언터쳐블, 범접할 수 없는 천외천, 절대적인 존재이니 뭐 논외로 치면 되고
결국 권력 삼파전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
가장 세력이 큰 것은 ‘마케팅 실장’인 HW. 위나라 정도의 포지션.
원래는 쩌리였으나 극한의 전투력과 투쟁력, 정치력과 언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기꾼 기질과 능력으로 황제의 신임을 얻어 최고 세력가가 된 인물이다.
그 무자비함으로 인원들을 정리하고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모냥까지, 가히 ‘조조’에 비견될 만…하다고 하면 조조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Anyway 그러하고.
그 다음 세력이 내가 속한 스튜디오의 개발 본부장 J.
원래 황제에 이은 권력2인자였다.
‘Sh…’ 뭐시기라는 MMORPG 게임을 개발할 때 주요 멤버였고, 그 공을 인정받아 PD자리까지 거머쥔 인물.
아트 출신인데, 모든지 자신이 컨트롤 하길 원하지만 그만한 능력이나 안목은 없고
답정너스런 생각과 고지식한 방식때문에 욕을 먹는 케이스.
귀도 얇아 그 인물 뽄새는 가히 유선에 비견할 만 하다 하겠다.
HW를 얕잡아보고 방치하다가 뒤통수를 맞고 고스란히 세력을 내어줬다.
쓸데없이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실리를 얻지 못하며,
세력이 위축되었으면 끈질기게 싸워야 하는데 팔랑귀로 인한 결단력 부재로
전선에 있는 실무진들의 사기와 능력을 저하시키는 것까지 완벽 유선 빙의.
촉에 비유하긴 뭣하지만 대략 그렇다고 치자.
마지막 ‘쩌리’ 세력은 사업 본부장인 Y.
원래 2인자로 J와 티격태격하며 세력도 소진하고 신뢰도 잃어가다가 HW가 급부상하면서 완전히 쩌리 신세가 된 인물.
성격은 무난하나 쓸데없이 야심만 큰데 능력은 부족하고 사람 보는 눈도 없어서 황제의 눈 밖에 난 지 한참 됐다.
다만, 세력 균형을 위해서 (정말 딱 이 이유) 여전히 주요 인사에 ‘자리만’ 잡고 있는 인물이다.
(나중에 이 인간 때문에 내가 크게 욕을 보게 되어, 세 명 중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 되어 버림. 관우 잡아 죽인 손제리랄까. 아, 손제리한테도 미안한데.)
기타 사외 세력으로 개발PM에서 ‘희한한 사건’으로 인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전무후무한 불세출의 포지션’을 만들어 내면서 그 자리로 옮긴 인물인 K.
한동안 이야기의 중심에 계실 분이라 하겠다.
‘Sh…뭐시기 게임 개발 주역이자 J와 친하면서도 서로 물어 뜯는 정치 모사꾼으로
나중에 나름 화려하게 복귀해서 결국 이직도 잘 하게 된 H,
이 정도 인물들이 회사 내 정차 판을 주도하는 '큰' 말 들이었다.
내가 속한 기획 팀은 바로 저 J밑에서 구르고 있었다. 나는 시나리오 설정 기획자였고, 내 사수 역할을 하던 ‘웹 소설가’ (당시만 해도 흔하진 않았다) 출신 기획자 s와 다른 여자 기획자 a가 나와 같은 컨텐츠 파트. 나머지는 시스템 파트였다.
본래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은 처음에는 기획 팀 소속이었던 ‘레벨 파트’ 였으나,
덩치가 계속 커지고 중요성이 증대되어 후에는 팀으로 분리되어 기획에서 빠져 나갔었다….흑흑;
이때 갔으면 지금 내 인생이 바뀌었을까 싶은데. 크크 아몰랑
아무튼.
시작부터 기묘한 일을 겪으며 첫 회사 생활이 시작됐다.
“염불씨, 혹시 이 사람 알아요?”
첫 회사 입사 후 일주일 정도 됐던가?
레벨 파트장이 내게 이력서와 포폴 하나를 보여줬는데
오잉?
“이건…제껀데요? 아, 아닌데?”
“입사지원서로 들어왔는데, 아무리 봐도 염불씨가 냈던 포폴이어서…이 사람 같은 회사 출신이던데?”
띠용
그것은 전 직장 마지막 기획팀장 이었던 인물의 이력서와 포폴이었고
레벨 파트로 지원하면서 낸 포폴은 무려 ‘내 포폴을 거의 이름만 바꿔서 제출’한 것이었다. 크크크
뭐 대단한 포폴도 아니고, 던전 컨셉과 설정을 잡고 구조를 간단히 그린 도면을 첨부한 그런 것이었는데. 그걸 고대로 제출하다니.
이해는 갔다. 아니, 사람으로써 이해한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납득이 갔다는 말이다.
자신이 포폴을 만들 능력이 안 되는 친구였기 때문에.;
내 덕에 사람 하나 거르게 됐다고 고맙다고 하는 레벨 파트장의 인사를 받으며
정말 내가 새로운 회사에 왔구나 하는 걸 실감하며 마음을 다잡던 기억이 난다.
업무는, 당연히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테이블 구조 짜면 프로그래머들한테 욕 먹어요.”
“아직 리뷰도 안 해 놓고 그걸 어떻게 알아? 뭐 점쟁이야?”
“x을 먹어봐야 x인 줄 알아요? 개발 하루 이틀 해 본 것도 아니고.”
“캐릭터 설정이 안 맞는다니까? 이런 스킬 사용하려면 지금 스킬 구조에 추가해야 하는데, 염불씨가 감당할 수 있어요?”
“반대로 이런 설정이 안 들어가면 맵이 안 나와요. 배경 컨셉에 맞는 클래스 추가하라는 게 피디님 명령인데, 그럼 바꿔서 설득하면 되겠네요?”
“왜 말을 그런식으로 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데 이 컨텐츠 UI가 너무 올드한데…”
“올드? 뭐가 올드하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봐.”
“아니, 우리 게임은 정통판타지 스타일 아니잖아요? 색감도 그렇고 여기 이거 뭐야, 양피지 같잖아요?”
“그렇게 맘에 안 들면 당신이 그리던가? 이런 색감 바탕으로 디자인하는 게 쉬운 줄 알아?”
기획팀 회의는 전쟁터 그 자체였다.
모든 팀원들 중 무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단 두 사람, 시스템 파트장이었던 친구 c와 기획 팀장 둘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싸움닭. 당연히 외부 리뷰 이전에 거치는 팀 리뷰와 컨펌의 과정은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한 성격들 했고, 주관이 뚜렷했으며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반대로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도가 튼 자들이었다.
나라고 뭐 조용 조용한 성격은 절대 아니었고, 적응해 가면 갈수록 더 열심히 침을 튀기며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크크크
그럼에도 난 그 팀이 좋았다. 계속. 퇴사할 때까지 난 이 기획 팀이 좋았었다.
회의때는 죽을둥 살둥 싸우면서도 끝나고 나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떠들고 퇴근 후 술 마셨으니까.
그리고 싸우면서도 선을 지켰고, 어떻게든 결과물을 합의해서 내놨으며 일을 굴러가게 만들었었다.
난 그제야, 정말 기획자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이 전 회사에서 내가 한 사람의 기획자 몫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 회사의 이 팀에서는 '이런 게 정말 기획자의 역할이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시기는 아니었다.
회사에 이제 좀 적응해서 할 만 하네 하던 시기가 지나던 즈음에 사건이 벌어졌으니까.
우선 사수s가 퇴사(당?)했다.
“오늘부터 염불씨가 메인 시나리오 쪽까지 다 하세요.”
“눼?”
원래 소설가 출신인 내 사수 s가 (오래 일했고, 기존에 뼈대를 세웠으니) 시나리오 쪽을 다 전담하고 있었다.
난 그 아래에서 파생되는 서브 시나리오나 캐릭터 설정, 배경 설정이나 다른 컨텐츠 기획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런데 입사하고 두어 달 지났나 싶은 어느 날 출근을 하니 팀장이 내게 저렇게 통고해 온 것이다. s가 퇴사했으니 일을 맡으라고.
송별회도 없이 그냥 남은 연차 소진하고 나가는 형식이 됐던 걸로 기억한다.
나가기 전에 인사는 하긴 했는데, 왜 나가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말을 안 해 줬다. 나야 별로 친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근태가 안 좋았고 업무 퀄리티를 피디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그 때문에 압박이 와서 팀장이 개선하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고쳐지지 않아 퇴사를 하게 됐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물론 사실이 뭔지는 모른다.
내 기억으로는 그저 나이가 조금 어린,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친구였을 뿐이었다.
그저 다른 직책자들은 이 친구의 톤 앤 매너를 마음에 안 들어했었을 수도 있겠다 싶긴 했다.
아무튼 이 s가 퇴사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변했다.
여자 기획자 a 때문이었다.
a는 연차도 나와 비슷하던가 조금 높던가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히 이 회사에서도 선배니까, 이 분이 메인을 맡을 줄 알았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것이다. 나도 당황했지만 a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는 친근한 톤 앤 매너를 가진 분이었는데, s가 나간 이후 뭔가 관계가 불편해져 버렸다.
내 자격지심인가 싶었기도 했었는데, 확실히 그렇다는 느낌을 받으며 생활하게 됐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낸 결론은, 그냥 일이나 잘하자,였다.
내가 이어 받았으니, 내가 결과물을 잘 내놓으면 이런 저런 감정과 이야기는 다 사라질 테니까.
s한테는 커피 마시면서 좋은 말로 잘 도와 달라고만 했고. s도 표면적으로는 좋게 좋게 넘어갔다.
그 이후 관계가 딱히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조금씩 멀어져 갔던 것 같다.
게다가 a라는 분이 ‘관계가 안 좋은 사람과는 계속 안 좋게 되는’ 성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다른 팀의 신임을 잃는 일도 벌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권력자 중 하나였던 PM K의 눈 밖에 나 버려 고통 스런 나날을 보내면서
나도 덩달아 거기에 휘말려 버렸다.
K라는 사람은 나름 대단한 양반이었다. 무려 회장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으니까.
모략가 스타일에 입도 잘 털었다. 그리고 자기 밑의 사람들을 이용해 정치 질을 하려는 것이 또 하나의 스킬이었다.
그 정치 질이 내게 돌아온 이유는 a라는 기획자 영향도 있었고. 이미 예전에 눈 밖에 났는데, 같은 파트에 나 밖에 없으니까.
K는 나를 자신이 뽑았다고. 팀장은 안 뽑으려고 했는데 자기가 결정해서 뽑은거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를 향한 정치질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s도 나간 마당에 a는 능력이 없다며, 내가 컨텐츠 파트장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둥 뻘소리를 늘어놓았다.
(이게 웃기는 게, 컨텐츠 파트장이라는 직책 자체가 그 때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니, 정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물론 PM이라는 직책과 K의 포지션이었으면 만들 수는 있겠지만, 굳이 날 위해 그럴 이유가 없지 않겠나? 크크)
그리고 그 끝에는 한결같은 목적이 있었다. 정치꾼은 목적 없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건 다름 아니라, a를 찍어내는데 동조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때는 몰랐다. 왜 이렇게까지 a를 미워하는지.
나중에서야, K를 둘러싼 일이 터지고 나서야 어렴풋이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을 뿐이다. 크크크
아무튼 이 K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나도 슬슬 짜증이 나던 시기에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기획 팀장이 잘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