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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2/27 19:18:06 |
Name |
옹정^^ |
Subject |
잃어버린 낭만을 회고하며... 가림토 김동수 |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런지... 거창하게 쓰고자 하는 글은 아니나, 오늘 같은 날에 생각나는 사나이들의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낭만에 대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꽤 된 스타계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한 이야기이니 만큼(또 오래된 만큼), 그 정보에 대한 정확성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말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십시오.(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환영입니다.) 또 아무리 객관적으로 서술한다하여도, 보시기에 그렇지 못한 점이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가림토 김동수
왜 이 사나이일까... 글을 쓰기에 앞서 말 하건데, 이 사내가 전심전력으로 스타판을 종횡할 때, 이 사내를 진심으로 응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 사내랑 같은 시기에 빛을 내었던 황제나 폭풍, 귀족에 매력을 느꼈으면 느꼈지. 이 사내에 대해서 그렇게 큰 매력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낭만을 회고하기에 앞서, 이 낭만을 같이 하지 못한 자들에게 꼭 한명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단연코 이 사내. 가림토 ‘김동수’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지금의 스타계에서 최강을 얘기한다면 십 중 팔구는 마재윤을 꼽을 것이다. 가림토 김동수는 낭만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더라도, 그 이름이 최강자란 이미지로 회고되진 않는 편이다. 또한 나의 기억속에서도 그는 정상에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그런 이미지의 사내는 아니었다. 사투 끝에 왕좌를 차지한 프리첼 때도,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를 거꾸러트린 스카이 때도 그는 언제나 밑에서 상처입기를 주저하지 않고, 결연한 눈빛으로 정상을 치고 오르던 사내였다. 그가 차지한 스타리그의 우승횟수가 정작 이윤열을 제외하고, 그 다음임을 상기하더라도, 같은 횟수의 황제나 투신에 비하여 그가 가지는 이미지가 절대자란 느낌을 가진다는 것은 어렵다. 그건 아마도 황제나 투신이 그 자신만의 절대적 시대를 가졌으나 그는 그렇지 못하였고, 그의 종족이 가지는 문제에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2. 젊은 곰 김동수
어떤 말로 표현을 하여야 할까... 낭만시대를 가장 흥미롭게, 가장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이는 황제도, 폭풍도 귀족도 아닌 바로 이 사내다. 프리첼 시절, 이 청년 순수하게 사람을 감탄하게 만든 무언가를 지녔다. 감탄하고 입을 벌리게 했던 건 다름 아닌 ‘힘’.
흔히들 낭만의 시대를 스타일리스트들의 시대라고 회고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협의 세상이었던 그 시대 각 문파의 비급은 비밀리에 전승되었고, 각 문파 특유의 무공은 독특하기 이를 때 없었다. 그러나 그가 웅비하기 시작한 프리첼 배를 기점으로 봤을 때 스타일리스트들이 활보했다고 보긴 어렵다. 마치 기틀을 잡아가는 시기였다고 할까. 하나의 색채를 가지고 한게임, 한게임을 자신의 테마로 물들여가는 그런 시절을 스타일리스트들이 활보한 시절이라 한다면 이 시기는 그런 토양을 지닌 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시대였다.
프리첼 시절의 가림토는 패왕의 면모를 보였고, 그 패왕의 기세는 종족을 불문하였다. 상성이란 말이 생겨나기 전이었으나, 그가 결승전에 봉준구에 보여준 모습은 상성의 법칙에 전혀 괘념치 않은 힘 그 자체의 모습이었고, 종족의 유불리로 그걸 격파했다기보다는(또는 극복했다고 하기엔) 가림토스가 가진 본연의 ‘힘’에 뮤탈의 귀재 봉준구가 졌을 뿐이란 것이 맞는 말이겠다.
3. 임요환
프리첼 이후, 그 이전의 우승자들처럼 그 또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진 못한다. 이 시절 그는 황제, 정확히는 황제라 불리게 될 사나이와 게임 외적으로(?) 대립을 하게 되는데, 속칭 ‘송병석과 아이들 사건’이라 불리는 일화다. 김동수는 겜큐 3차(?) 대회에서 임요환의 전략적 플레이에 패하게 되는데, 당시 송병석이 이를 지탄하자 문제가 커졌고 강도경, 김동수가 여기에 가세해서 당시 파장이 컸던 사건이다. 여기서 이 시점에서 그 문제에 대한 잘잘못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나, 김동수가 임요환의 게임 스타일에 비난을 가했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낭만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아가서 낭만 이전의 시기를 보지 못했던 자들은 그 시기의 게이머들을 입체적으로 기억하기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게이머가 가림토 김동수다. 프로토스의 아버지, 전략의 대가 김동수가 전략적 요소를 비난했다? 모두 갸우뚱 거리고 남을 사안이다.
임요환, 황제의 면모 역시 작금의 스타판에서는 게임 내적으로의 업적보다 게임 외적인 면의 업적이 더 강조됨으로서 그가 단지 한 시대의 최강자였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이러한 것에는 그 후에 나타나는 절대자들의 영향이 강하다. 그러나 한 시대의 변혁자가 단지 최강자 중 하나로 기억된다는 것은 그 시대를 같이 공유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송병석 일화는 작게 보면 송병석과 그 친우들과 임요환 간의 대립이었으나, 크게 보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패러다임을 놓고 대립한 신 ․ 구간의 대립이었다. 단지 물량 힘 싸움과 정면대결만이 정당한 룰이며, 매너라는 인식은 마치 ‘롤랑의 노래’가 흐르던 중세의 전투방식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임요환의 등장은 게임 내적으로 볼 때 간과해서는 안 될 면이다. 등장과 동시에 룰을 파괴해버린 자였으니.
따라서 김동수의 저런 면은 사실 그만이 아닌 당시 임요환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게이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가치관이었다. 물론 김대기와 같은 이도 있었으나, 단순히 보여주는 전략이 아니라 이기는 전략을 구사하고 룰 자체를 파괴했다는 점에서 임요환은 다르다 말하겠다.
또 가림토는 이 시기에 공공연히 자신이 생각하는 최강의 테란을 '귀족', 김정민이라 언급하였다. 여기에 필자의 생각은 ‘글쎄’다. 물론 귀족의 대단함은 그 시기를 공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더 마린’ 김정민은 kbk에 우승하기 전에도 그는 온라인상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강자였고, 황제의 세상이 열렸을 때 그를 지독히 괴롭히고 그에 맞서 싸운 대항마 격인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를 황제란 위인을 제쳐두고 테란의 제 일인자로 내세운 것은 당시 황제의 포스를 기억하고 있는 자라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결코 김정민을 폄하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다만 당시의 황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본좌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그‘황제’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읽어오던 분들이라면 자연스럽게 가림토가, 그 김동수가 김정민을 테란 제 일인자로 꼽는 것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가림토는 황제 임요환을, 아니 환상의 테란 임요환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4. 변화? 진화!
김동수가 여기서 그쳤다면, 시류를 보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면 필자가 지금 이렇게 그를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진 못할 것이다. 그를 변화시킨 것이 무언인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게임 내적으로의 깨달음일 수도 있고, 게임 외적인 환경의 변화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데 그것은 아마 게임 밖으로의 외도(?)아닌 외도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잠시 iTV에서 해설을 맡은 적이 있다. 아마 많은 분들도 기억하실 것이다. 게이머로서의 눈이 아닌 해설로서의 눈으로 본 스타는 그에게 어떤 세상이었을까. 시청자의 눈으로 본 스타는, 양자가 아닌 제 3자의 눈으로 본 전장은 분명 그를 성장시켰고 그를 변하게 하였다. 게이머 김동수가 아닌 해설자 김동수는 임요환의 보여주는 경기에서 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하였던 간에 순수하게 감탄하였고, 흥분했었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놓은 전장에서 그는 전략이라는 요소를 찾으려고 했고, 그것에 대해 풀어 놓아야 했다. 단순한 빌드싸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막 그 순간 피어나던 스타일리스트들의 세계를 설명해야 했고 이해해야 했다. 그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색채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의 여몽, 그를 생각나게 한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고사를 만들어 낸 것처럼 무력에 지력을 더해, 진정한 장수로 거듭난 여몽만큼 가림토를 잘 표현한 인물도 없으리라.
5. 천명(天命)
sky2001에서의 가림토. 그가 다시 스타리그에 등장했을 때, 그를 우승후보라 뽑은 이가 몇 명이던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언젠가 끝나리라 생각했던 황제의 독주가 계속되었고, 세상은 새로운 영웅을 갈망하고 있었다. 가림토의 등장은 천명을 받드는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며 제국을 넓히던 황제 앞에 곰의 앞발만이 아닌, 여우의 두뇌를 겸비한 프로토스의 대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귀족과의 싸움을 시작으로, 그는 변모한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8강에서 황제에게 일격을 허용하였지만 테란의 또 다른 황제, 메카닉의 대가 김대건을 상대로 전략적인 모습을 보이며 승리하였다. 이전의 그였다면 상상할 수 없을 모습이다. 꾀를 쓰기 시작한 곰은,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한 가림토는 프로토스 그 자체의 이미지를 형상화 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완성형 프로토스에 대해 묻지 않았던가. 회고해 보건데 그건 이미 한 사내가 보여준 적이 있다.
가림토, 바로 그다.
폭풍을 곰의 앞발로 날려버리고 선 결승은, 이미 승부가 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황제를 제외한 4강의 삼인은 그 당시 황제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고 거론되던 그들이었다. 귀족의 거센 저항을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황제는 모든 반군세력의 결집을 보았다. 프로토스 로망의 시작이 된 스카이2001이지만 당시의 결승은 황제의 독재 완성이냐, 그것을 저지하느냐가 모든 게임계의 시선을 잡아두고 있었다. 1년 전 모든 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관식을 거행했던 황제지만, 더 이상 인민은 절대무적 황제를 요구하고 있지 않았다. 시대가 내린 영웅을 하늘은 또 다른 영웅의 손으로 거꾸러트리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황제. 본좌란 말이 없던 시절. 황제란 본좌를 지칭하던 말이었다. 테란의 황제가 아닌 ‘황제’ 그 자체로서 오연한 눈빛으로 정상에 서 있던 그다. 쉽지 않았다. 한 경기, 한경기가 명승부였고 피를 흘릴 대로 흘리는 혈전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몰렸을 때, 사투란 사투를 모두 겪고 올라온 전략가들의 싸움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가림토 그가 본연에 가지고 있던 곰의 앞발, 우직한 뚝심 그것이었다.
마침내 거인은 무너졌고 곰은 그 위에서 포효하였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다.
6. 다시 김동수
황제를 무너뜨린 그였지만, 사투의 영향이었을까.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힘을 잃어갔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가 버렸지만 황제와의 마지막 싸움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패스트 아비터에 고스트의 락다운이 횡행하는 그 경기는. 스타란 게임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할 무언가를 가슴에 심어 놓았다.
김. 동. 수.
천하를 놓고 황제와 겨루던 그가 돌아왔다. 당당했던 모습보다는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서 세월이 흐름을 느낀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전보다 못함은 분명 당연할 지언데, 그것을 인정 못하는 내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이, 나의 기억 속에 새겨진 그의 모습이 퇴색되어져 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허나 믿는다. 프리챌 시절 그는 지금과 달랐고, 스카이 시절 그는 지금과 달랐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모습을 보이는 그는 또 다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가 절대자에 도전하는 그 순간. 또 한번 전설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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