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4/04/06 17:21:06
Name 작고슬픈나무
Subject [소설 프로토스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supply9/10)
"으악!"
"야, 그르르. 고함은 왜 지르는 거야?"
"응? 으, 응. 아, 아니야. 자 어서 가자."
"뭐, 뭐야. 설마 너 무서워서 그런 거야? 셔틀의 하강막은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하더라도 수직 위치에 탑승자를 안전하게 내려준다는 거 몰랐니?"
"누가 무섭대?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가자. 어느 쪽..헉!"

성춘은 왠지 미덥지 못한 그르르가 또 뭐에 놀라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가 주저앉을뻔 했다. 안에만 있을 땐 몰랐는데 밖에서 본 현자의 탑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지붕이 거의 내려앉아 있었고 입구를 비롯한 외벽도 부서지면서 푸르스름한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저길 다시 들어가야 한단 말이지. 자살 이상도 이하도 아니군.

"형, 집으로 가자!"
"뭐? 킹덤 아저씨 아저씨가 너희 부모님도 현자의 탑 회의에 참석하셨을 거라고 하셨잖아."
"아니야. 아닐 거야. 집으로 가자, 형. 빨리!"
"그, 그래. 그르르 넌 어떻게 할 거니?"
"응? 이, 일단 성제와 함께 가지 뭐. 그런데 저게 현자의 탑이라니..."

마지못해 발을 옮기며 성춘은 성제의 얼굴에 고인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렇지, 믿기 싫겠지. 저 탑 안에 정말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가셨다면.

"자, 잠깐!"
"뭐야. 왜? 거기 누가 있는데?"

틀림 없었다. 성춘의 친척, 레인 가문의 수장인 레인 포유. 큰 길에서 비켜난 골목에 쓰러져 있었지만, 성춘은 어려서부터 자기가 영웅으로 삼았던 그를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대할 때마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던 첫인상 뒤에 숨어있는 태산과도 같은 분위기를 성춘이 처음 느낀 것은, 승려 학교 1학년 때 3학년 선배에게 얻어맞고 울면서 집에 돌아간 날이었다.

"아저씨. 왜 여기.. 헉!"
"아, 아저씨 이게 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어서, 붕대를. 손수건같은 거 없니? 내 옷이라도..."

그 날 포유는 성춘에게 기야이 가문의 자존심이란 무엇인지, 싸움에서, 전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건 무얼 말하는 것인지를 얘기해주었다. 얘기 말미에 네가 이기고 돌아올 때까지 나 역시 수련하고 있겠노라던 포유는 뜰에 나가서 맨 손으로 바위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사이언 검이라면 일검으로 베어버릴 수도 있는 포유가 맨 손으로 바위를 내려치고 있었다.

"알겠느냐. 성춘. 맨 손으로 바위를 내려치면 절대 바위는 깨지지 않는다는 법은 이 세상에 없다. 할아버지가 이 바위를 쪼개놓을 동안, 넌 너의 상대의 자만심을 쪼개놓아라. 자 어서 가라 성춘."

물론 성춘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로 되짚어 돌아간 학교에서 그는 3학년 선배에게 다시 얻어맞기 시작했다. 대책도 없이 얻어맞기만 하는 성춘을 동기들은 물론이고 그 선배조차 어이 없어 했다. 느슨한 선배의 오른 손 뻗어치기를 처음으로 피한 성춘은 다짜고짜 선배를 껴안으며 무릎을 세워 선배의 명치에 박아넣었다. 방심한 선배가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사이, 성춘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오르며 선배의 턱에 발차기를 먹였다. 뒤로 넘어간 선배를 올라탄 성춘은 미친 듯이 선배의 얼굴에 주먹질을 해댔다. 그래도 선배는 선배, 몇 방 얻어맞지도 않고 성춘을 몸 위에서 털어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네?"
"형, 고개 끄덕이시잖아. 더 이상 물어보지 마."
"어서, 신의 탑으로. 그 곳으로만 가면 이까짓 상처 쯤은 문제 없어요. 어서 업혀줘, 그르르. 어서!"
"형, 아, 아저씨가 싫으시대."


성춘도 선배 몸 위에서 떨어지자마자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더 이상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무릎을 꿇지 않았다. 다시 주먹을 쥐려는 순간 머리가 텅 빈 듯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그래도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뒤로 물러나서 아무나 잡히는 동기에게 기댔다. 두 눈만은 변함 없이 선배를 노려보는 채였다. 다시 다가오던 선배는 성춘의 독기 어린 눈을 보고 멈춰 섰다.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아, 아저씨.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흑."
"우, 울지.. 마...라. 오, 성춘."
"아저씨!"


선배의 주먹이 풀렸다. 느리게 몸을 돌린 선배는 발걸음을 떼놓았다. 아직 안 끝났어, 아직이야. 성춘은 이를 악물고 돌아가는 선배를 향해 다가갔다. 동기들이 붙잡으려 했지만, 성춘은 계속 앞으로 갔다. 이미 힘이라고는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은 주먹으로 선배의 등을 때렸다. '때렸다'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되는 주먹을 등에 느낀 선배는 돌아섰다. 그리고 느리게 고개를 숙였다. 느리고, 정중하게.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떠나갔다. 이, 이겼어. 아저씨, 이겼다구요. 내가 바위를 깼다구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성춘은 정신을 잃었다.


"성춘. 그래, 네가 살아남아...구나. 성춘 자, 잘 들... 어라."
"아저씨. 말씀하지 마세요. 어서 신의 탑으로 가요!"
"아, 아니다.. 성춘. 신의 타, 탑이라고 해도 날 치, 치료할 순 어, 없다. 잘 들.. 어라. 우리, 기야이 가문에 나, 남은 자는, 이제 너, 성춘 뿌.. 뿐이다."
"서, 설마!"
"이, 이것을 바, 받아라. 이것이 우리, 가, 가문에 대대로 저, 전해 내려오는 수장의, 상징."
"이것을 왜 저에게!! 전 자격이 없어요."
"오, 성... 난 아직도 기억... 네가, 어, 어릴 때, 너의 첫 싸움을.. 너야말로 우리.. 가... 문의 피를 그대로, 간.. 직하고 있는.. 으..윽"
"아저씨!! 그르르 어서 아저씨를 업혀줘!"
"아, 아니다. 성춘. 어, 언제나 기.. 기억해라. 너의 첫 싸움... 그것이 바로... 진짜.. 레이...레인의 약속."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오, 서, 성제냐. 너도 이, 이젠 너희.. 가문을, 짊어져야... 겠구나."
"무, 무슨? 설마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셨나요? 예? 정말 보신 거에요?"
"성제야 진정해! 아저씨에게 뭐하는 거야!" "서.... 성제.. 야. 너희 부.. 모의 말을 전해... 주마. 누구보.. 다도 훌륭한... 템플.. 러가 되어라... 그리고 워.. 원수를 갚..아..라."
"설마.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성제... "

성춘은 성제를 힘껏 껴안았다. 녀석의 슬픔이 성춘의 몸 안으로 번져들었다. 불길같기도 하고 얼음장같기도 하고 박혀드는 칼날 같기도 하고 묵직한 쇠망치가 덤벼드는 것 같은 슬픔이 성춘의 몸까지 적셨다. 성제의 슬픔인가, 이것이.


"오, 성추...."
"아저씨!"
"나, 나도.. 마... 마지막..이구나. 전장에서.. 죽기가.. 소.. 원이었는... 데... 다.. 행.."
"아저씨, 안 돼요! 자 어서 업혀."

그르르가 포유를 억지로 성춘에게 업혔다. 성춘은 신의 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흔들릴까봐 최대한 조심스레 그러나 가장 빠르게. 뛰어가는 성춘의 눈이 탁해지기 시작했다.

"성...춘... 잘. 들... 어라. 레인... 의 정신을... 잊지.. 마라... 그리고.. 그 목.. 걸이의... 비밀..을..."

업힌 채로 귓가에 속삭이던 말이 끊어졌나 했는데 갑자기, 무거워졌다. 포유의 몸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견딜 수 없을만치.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 슬픔을, 이 분노를. 성춘은 고함을 질러댔다. 뛰어가면서 성춘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고함을 질러댔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이 모든 빌어먹을 것들에 대해서. 빌어먹을 레인, 빌어먹을 템플러, 빌어먹을 저그들에게 성춘은 고함을 질러댔다.

"형."
"성춘아, 지, 진정해. 성춘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듯 계속 소리치는 성춘의 옆에서 이제는 성제도 같이 고함을 질러댔다. 더욱 처절하게.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성제가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둘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어쩔 줄 모르는 그르르를 옆에 두고 그들의 고함은 그치치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하늘을 바라보고 고함 지르는 둘의 눈에, 아직도 제자리에 멈춰 있는 아비터가 보였다. 신의 탑위에 뜬 아비터는 틀림 없이 570호기. 신의 탑엔 사이오닉 퀸의 자리를 이어받을 준비 때문에 소운이 있을 터였다. 성춘은 발길을 돌려 포유를 내려놓았다. 조심스레 벽에 기댄 포유를 한 번 본 성춘은 그대로 신의 탑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의미를 모를 성제가 아니었다. 둘의 눈에서 살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

불펌 엄금...



B- P

not enough mineral...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총알이 모자라.
04/04/06 17:27
수정 아이콘
성춘의 변신 모드 돌입인가요?
10편으로는 짧은 듯한...
민아`열심이
04/04/06 20:31
수정 아이콘
헉 .... 미네랄이충분하지않으시다뇨 ㅠ ㅠ .... 아슬퍼염
04/04/06 21:15
수정 아이콘
양희은씨 노래 제목이군요.
공고리
04/04/07 00:01
수정 아이콘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어버_재밥
04/04/07 22:30
수정 아이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노래 좋죠..흐흣.
소설도 좋네요. 으하하하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538 질레트배 스타리그에 진출한 모든 선수가 우승할때 나올 기록. [39] 거룩한황제5244 04/04/07 5244 0
3536 [프로농구]티지, 2연패의 꿈. [24] 정 주지 마!3003 04/04/07 3003 0
3535 잘난척 아는척 사랑인가.... [26] 미츠하시3046 04/04/07 3046 0
3534 사전에서 찾아본 질레트 스타리그 프리매치에 사용될 맵이름 [18] Crazy Viper5679 04/04/07 5679 0
3532 [편지] PgR21의 누군가에게(5) [4] Bar Sur3528 04/04/07 3528 0
3531 CyberCraft GPX - Zero - 1. 악몽의 한계 영역(5) [5] lovehis4591 04/04/07 4591 0
3530 오늘 mbc게임에서 BIG3 종족 최강전 경기가 있었습니다. [23] swflying4873 04/04/06 4873 0
3529 사랑의 시 [5] Ace of Base3276 04/04/06 3276 0
3528 바람의 검심. 내 스스로의 재조명 [38] Ace of Base5682 04/04/06 5682 0
3527 네멋을 기억하시나요 [31] 이준희3397 04/04/06 3397 0
3526 프로리그를 앞두고 각팀 전력 분석.(5) - 한빛 스타즈 [8] 거룩한황제3251 04/04/06 3251 0
3523 날아라- Chrh! [17] ShadowChaser2897 04/04/06 2897 0
3522 [소설 프로토스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supply9/10) [5] 작고슬픈나무3112 04/04/06 3112 0
3521 몇달간의 기다림... 군바리 Style [8] ZeroSuni_Taiji3154 04/04/06 3154 0
3520 재밌는 MBCgame9. [26] cli4505 04/04/06 4505 0
3519 [잡담] KTF팀에 관한 짧은 생각 [15] sweety3997 04/04/06 3997 0
3518 [정보] wau 선곡표 [6] 한빛짱8689 04/04/06 8689 0
3517 승패를 떠난 나만의 희열, 그 쾌감!!! [8] Time_1193259 04/04/06 3259 0
3516 노자와 스타크 산책 名與身孰親, [8] 총알이 모자라.3165 04/04/06 3165 0
3515 10연패!!! + 3월 사이트 순위 TOP 100 [16] 어쩔줄을몰라4862 04/04/06 4862 0
3514 삼성 라이온즈........ [31] 류미선2998 04/04/06 2998 0
3513 임요환 컨트롤이라는 Use Map Setting에서의 경기를 해보며... [15] 만득5847 04/04/06 5847 0
3512 이야기가 나와서 써보는 새벽 추리 퀴즈~ [16] Ace of Base3088 04/04/06 308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